
[ 명사 ] 옅게 낀 연기, 또는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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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배
성별: 여
나이: 18
키/몸무게: 145/마름
생일: 12월 31일
가입 한 동아리: 밴드부
소지품: 기타케이스에 담긴 기타, 갈아입을 옷과 속옷, 수건 하나, 핸드폰
선관: -



외모:
그 나잇대 여학생 같지 않은, 자기관리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모양새. 살짝 충혈된 눈, 검음 그을음이 눈 밑에서 떠나질 않는. 잘 못먹고 다니는지 뼈도 앙상하고 피부색도 창백하기 그지없다. 그녀는 첫 눈에 남자라 오해받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은 작은 키덕에 "여자야?" 하는 물음을 들을 수 있었다. 별 말 없이 고개를 까딱 끄덕여주고 나면, 그제서야 오해는 풀리는 것이었다. 동영배는 목소리가 다소 저음에 허스키하다해도 여자임을 구분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졌다. 말 수가 적어 말짱 도루묵이었지만.
성격:
그러니까 동영배는..
그녀는 세상 모든 일이 시시하다는 듯 뭘 봐도 이렇다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기뻐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즐거워하거나 화내는 것도, 심지어는 깜짝 놀라는 일도 잘 없었다. 동영배는 감정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다. ..는 사실, 내비칠 감정이 없었다. 마치 흑백 필름을 보듯,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분명 자신의 눈에 담기는 자신의 세상인데도 제 3자마냥 방관하기 일쑤였다.
그녀는 마치 돈을 맡아주는 은행 같았다. 그녀가 몇 살이고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서 무얼하는지는 중요한게 아니었다. 중요한건 그녀가 은행같이, 감정을 맡아주는 것이었지. 그녀의 이름도 모르는 옆집 사람, 앞집 사람, 고주망태가 된 한 가정의 가정이나 흘러내린 마스카라가 보기 흉한 아가씨들은 동영배의 단골손님들이었다. 그녀는 싸구려 영화처럼 그들에게 술 한잔 건네지는 못했지만, 애기를 들어줌으로써 대접을 대신했다. 동영배를 찾아오는 이 중에 기쁨을 못내 이겨 자랑하는 이는 없었다. 하나같이 노엽거나, 슬프거나 둘 중 하나. 그들의 기나긴 하소연을 들으며 동영배는 그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제 안에 들어왔다 다시 훽하고 빠져나감을 느꼈다. 밑빠진 독마냥 손끝 발끝으로 흘러내려가는 이 감정들은 동영배에게 잠시도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은행이라 하기엔 고객들의 자산 관리가 퍽이나 나쁜 은행이었다. 개중에서도 다행인건 그녀의 고객들이 맡아둔 것을 다시 찾아가려 하지 않는단 것이었다. 이 세상 많은 고민들 중엔 단순히 남에게 털어놓음으로써 해결되는 것들이 많았다. 실컷 그녀에게 화풀이를 하다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어쩌면 동영배는 이렇게 생각헀을지도 모른다. 부럽네요. 그렇게 화낼 수도 있어서. 고민상담이 끝난 후 그녀에게 남겨지는 것은 일절 없었다. 그럼 동영배는 손을 그러모으곤 이내 중얼거린다. 아, 이렇게도 텅 빈 사람이었던가. 나는. 그녀의 곁엔 지독한 허무의 그림자가 밤이 되어도 가시질 않았다. 타오르는 불이 되지 않는 이상, 그녀에게서 그 어둡고 새까만 사신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구멍난 댐, 밑빠진 독, 깨진 유리컵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사회부적응자니, 흔히들 말하는 사이코패스는 아니었다. 다만.. 다만, 담을 수 없었다. 그 뿐이었다.
그녀는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것에 능했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함, 불공평함을 목격하고도 쉽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방관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도 없었다. 나 하나의 도움으로 끝나는 일이었다면 애시당초 일어날 일이 아니었다. 다수에 맞서 살아남을 소수는 없다. 그런 비관적인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절망을 보고도 못본 척. 희망을 보고도 못본 척 했다. 그녀는 투쟁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아마 어느 날 갑작스레 묻지마 폭행을 당한다해도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폭행이 아니라 살인이라도. 그녀는 딱히 위기를 피하려 하지 않는다. 위기를 받아들이고, 또 위기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냥, 파도에 실려 곧이곧대로. 끝없이 위기란 바다 속에 침잠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마치 운명인 것 처럼.
특징:
그녀는 기타를 수준급으로 다뤘다. 어디에서 배웠냐 물어도 묵묵부답. 그녀 주위의 사람들은 더 캐묻기 보단 그저 그 선율을 즐기기로 했다. 장르는 이것저것에 통달했는지 곡을 신청하면 망설임없이 곧잘 쳐댔다. 음악은 좋지만, 노랠 부르는 건 싫다. 기타를 치는건 좋지만, 클래식은 싫었다. 동아리는 당연히 음악부가 아닌 밴드부로 들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입학에 맞춰 이사왔다. 이 지역 토박이가 아님.
한가람 - 같은 밴드부 친구. 한번씩 원하는 곡을 쳐달라 신청해오는 가람의 부탁을 거절않고 곧잘 연주해준다. 가람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그의 목소리를 꽤 좋아하는 편. 가람의 음역대에 어울릴 곡들을 찾아 은근슬쩍 연주하기도 한다. 듀엣으로 호흡도 자주 맞추는 편이다. 자신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내심 고마워하고 있음.
비밀: 과거
처음엔 내가 음악을 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울아버지는 멋들어진 연주가였다. 주로 치는 것은 기타로, 줄이 붙어있는 것이라면 아무렇게나 잡아당겨도 리듬이 되던 사람이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음악과 함께 한 탓에 퉁퉁 부어버린, 그 위대한 창조의 손 끝으로 정 든 친우를 좌라락 하고 튕기면 나와 오빠는 딴 짓을 하고 있다가도 환호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방에서 냅다 뛰쳐나와 엉덩이를 깔아뭉개고 자리를 잡으면 관객을 기다리던 연주가는 그제야 연주를 시작했다. 아, 정말 언제 들어도 좋은 멜로디들. 집 안엔 노랫소리가 끊이는 날이 없었고, 웃음소리 또한 그랬다.
11번째 생일 되던 날엔 악기점에서 악을 지르며 발악한 덕에 첫 눈에 반한 기타를 손아귀로 끌어오는 것이 가능했다. 새하얀 빛이 아름다워 이름을 엘리자베스라 지어줬다. 두근대는 맘으로 슥, 덜 자란 손바닥을 들어 쓸어내리면 그녀가 뛰는 제 맘을 알아보고 키득키득 웃는 것만 같아 괜히 얼굴이 벌게졌다. 콧김을 훅훅 불며 안녕, 하고 좌라락. 그 감미로운 음색에 저는 못내 크으 감탄하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소리를 알아본 아버지와 오빠가 제 곁으로 슬금 다가오면 나는 그녀를 영혼까지 그러모아 끌어 안고 연신 찬사를 쏟아냈다.
들었어? 들었지? 내 엘리자베스 엄청나지?
무슨 이름을 그따구로.. 음색은 좋은데 연주자가 별로네.
뭐라고?!
밤 늦은 시간까지 서로를 깔깔 흉보며 투닥대는 남매의 목소리가 들리고, 제 오빠와 싸우기 바빠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분명 미소 짓고 있을 아버지가 곁에 있었다. 그 당시엔 그게 행복인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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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동영배는 오빠와 다니고 있는 중학교에 입학, 마찬가지로 오빠가 속해있던 밴드부에도 입성합니다. 반기는 시선은 따뜻했고 그녀는 기대에 보답하듯 형제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습니다. 어느 중학교에 대단한 남매가 있다더라.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에겐 음악이란게 퍽이나 멋져 보였나 봅니다. 그들은 빠른 입소문을 탔고, 어느새 지역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가을의 막바지 축제날 그와 그녀는 그 누구의 기대도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화려하게 불태운 그 정열이, 관객들의 환호가, 심장에 내리꽂혀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질 못했습니다.
그 남매가 추락하기 시작한건 다음 학년에 진학했을 때 부터였습니다. 흔한 얘기죠. 과한 재능은 언제나 화를 부릅니다. 남매는 언제부턴가 밴드부에서 소외되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음악을 하는데도 유명해진건 그 둘 뿐이었기 때문일까요, 사실 어떤 사건이든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그의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시작은 어떤 작은 것이었겠죠. 누가 퍼트렸는지 알기 뻔한 질나쁜 소문들은 오빠의 발목을 잡았고, 친구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그에게로 걸음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사실 정말 작은 것이었는데, 조금만 더 그의 친구들이 그를 믿었다면, 아주 조금만 더 그를 살갑게 생각했다면, 아주 아주 조금만 더 그를 시기하지 않았더라면. 오빠는 한날 꽃처럼 져버렸습니다.
아버지는 남매를 자신의 긍지 혹은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길러낸 최고의 수제자들. 오빠의 죽음 이후론 글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지역인이 모두 알았던 그였으니, 그의 죽음에 대한 소문도 멀리멀리 퍼져나갔습니다. 자살을 했다더라, 아니다 묻지마 살해를 당했다더라, 여자친구가 바람현장을 목격하고 저질렀다더라.. , 하는 3류 찌라시같은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아버지와 자신은 잽싸게 짐을 꾸렸습니다. 그녀를 배려한건지 아니면 오빠를 배려한건지, 혹은 자기 자신을 배려한건지. 아버지는 그녀에게 시골로 내려가자 권했습니다. 이사 수속을 밟고, 당도한 곳이 이 곳. 아버지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밥을 밀어넣어도 밥그릇이 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자신은 밤마다 아버지를 찾아가 괜찮아 그를 위로합니다. 실은, 정말 괜찮지 않은데. 자신이 아버지와 오빠를 따라 기타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음악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밴드부에 들지 않았더라면,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고 연주를 같이 해오지 않았더라면. 어느샌가 집은 적막해졌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그 죽일 듯이 미운 기타와 음악을 잡곤 밤새 줄을 당겼습니다. 웃음소리는 끊겼지만, 노랫소리만은. 노랫소리만은..
그녀가 그 어떤 것에도 투항하지 않는 건 자신이 음악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느 날 갑자기 천벌을 받아도,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동영배는 타인의 실수와 고의로 삶을 끝마칠 수 있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추억:
축제날.



